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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하고 정감있어 보이는 곳, 한남동 우사단길



높은 곳, 낮은 삶 - 한남동 우사단길

방송 : 2014년 05월 04일 (일) 밤 11시 5분 KBS 2TV
CP : 장영주
팀장: 김형운
PD : 홍기호
글, 구성 : 김수현
내레이션 : 정형석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 한남동 우사단길
최근 이주한 재기발랄 청년들과 토박이 주민들이 새롭게 만들어가는 마을 이야기.
여기는 우사단 마을입니다.




■ 사람 향기 그윽한 ‘높은’한남동, 우사단길

 재벌 총수들이 사는 곳, 대사관 타운, 유엔 빌리지, 고급 부티크들...
한남동을 안다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맞다. 그러나 일부분만 맞는 얘기다. 이것은 남산 자락의‘낮은’한남동 이야기다. ‘낮은’한남동을 등에 지고 순천향대 병원 뒤쪽을 바라보면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이룬 동네를 볼 수 있다. 이른바 ‘높은’ 한남동, 우사단길이다. 구석구석 미로처럼 뻗어있는 좁은 골목길과 조금만 올라도 금방 숨이 차오르는 수십개의 가파른 계단들.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한강으로 뻗어 있는 길을 따라 도깨비시장 방향으로 걷다보면,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남아있나 싶을 만큼 비현실적 풍광들이 펼쳐진다.

 이 동네엔 여전히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이발소와 아방가르드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청년 예술가의 가게가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골목 안쪽에는 집 앞에 내놓은 평상에 동네 노인 몇몇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옆에서는 히잡을 쓴 무슬림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한, 혹은 공간을 뒤집어놓은 듯한 동네.
 서울 한가운데 있지만 너무나 서울 같지 않은 동네.
 그 어느 곳보다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네.
 한남동 우사단 마을에서의 3일이다.


‘이 마을은 샐러드 같아요.
샐러드는 각각의 재료들이 살아있잖아요.
스프처럼 우려서 하나의 맛을 내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엔 각각의 색깔들을 올곧게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잘 어울리는 맛이 있어요’
- 김연석 (33세) -




■ 달동네 아틀리에, 우사단길 계단장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한가롭기만 하던 마을은 젊은 열기로 북적인다. 이슬람사원 옆 계단에 펼쳐진 벼룩시장을 찾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른바 ‘계단장’은 작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1~2년 전부터 우사단길에 자리잡은 청년 사업가들과 예술가들이 손을 잡고 기획에서 진행까지 일체를 전담한다. 별도의 수수료를 챙기지는 않는다. 마을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봉사활동이다.

 역사는 짧지만 계단장은 우사단길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겨우 70여팀에게 줄 수 있는 매장 자리를 얻기 위해 수백팀이 신청한다. 자기들이 직접 만들거나 기획한 상품들을 주로 와서 파는 셀러들에게는 돈을 버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꿈을 만들어가는 의미가 더욱 크다. 동네를 채운 젊은이들의 활기만으로도 동네 어르신들은 즐겁다. 그들도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청춘은 나이랑 상관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열정이 있는지에 따라
나이가 정해지고, 삶의 재미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 이선민(30) _ 계단장 셀러 -


 “재밌네, 멋있어. 동네가 죽었었는데 완전히 살았네.
좋아. 노인네라도 옛날 생각나서 좋아.”
- 김종옥(80) 마을 주민 -




■ 뉴타운의 아이러니, 우사단의 현재를 규정하다

“재개발이 이 동네 특징이에요. 그것 때문에 집들이 안변하고 있는 거고,
그것 때문에 동네의 색깔이 만들어져 있는 거고, 아이러니하게도.
앞으로 어떻게 색깔이 바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 김정인 (34세) -




 우사단 마을에 2년 전 이사 왔다는 김정인씨. 처음 오자마자 한강이 보이는 옥상에서 3일 동안 100여명의 지인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고 한다. 김정인씨는 우사단 마을의 풍광을, 그것보다는 이곳의 마을살이를 정말 좋아한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리워 자주 찾는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주민들의 생각이 똑같지는 않다.

 김정인씨 집 옥상에서 마을을 살피다보면 집 지붕 위에 설치된 빨간 깃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건 깃발들이다. 내건 지 꽤 오래된 듯 어떤 것은 거의 색이 빠져 흰색으로 변했다. 뉴타운, 재개발... 최근 10년 동안 한남동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재개발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주민들 사이에도 작지 않은 골을 파놓았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지금은 수면 아래 있지만 언제 또 들썩일지 알 수 없다. 일부 주민들은 재개발이 바꿔놓을 풍광보다는 재개발이 바꿔놓을 삶의 모습에 더욱 우려를 갖는다.

 살기 좋은 집, 살기 좋은 마을에 대한 제각각의 정의와 열망들.
울퉁불퉁한 세상살이의 다채로움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동네. ‘높은’한남동, 우사단마을.



▶ KBS 홈페이지


 다큐멘터리 3일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입니다. 한남동 우사단길을 골목골목 자세히는 모르지만 서울에 살았던 사람으로 근처를 한번쯤 지나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반갑더라구요. 한국은 너무 빨리 변하고 바뀌고, 낡으면 고쳐쓰는 것보다는 새로 짓고 만들고, 그러니 오랫만에 한국에 들르면 안그래도 시차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바보가 된 느낌이 들곤 합니다.

낡았다기 보다는 오래된 골동품 같은 마을, 그리고 옛 것을 지키고 싶어하는 젊은 분들이 계셔서 좋은 마을 같아요. 세련미 넘치는 가게들과 오래된 가게들의 느긋한 정취가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 그 동네에 가면 어디서건 '물 한잔만 주세요~.' 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곳에 가면 웬지 모두 아는 분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푸근한,  멋진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독립다큐멘터리 '우사단길' 
감독 김삼삼

 단편 다큐멘터리 우사단길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만났습니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골목길, 그리고 나른한 봄날 같았던 겉모습 속엔 다른 이들과 같은 하루를 열심히 사는 여러분들이 있었습니다. 

70년대에서 멈춘 듯한 골목길 분위기와 현대적인 때론 예술적인 요즘 분위기가 묘하게 잘 맞네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변화를 바라는 분들도 계시겠죠?